AI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사이버대학, 인터넷 강의가 일상화된 오늘날, ‘서당’은 마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처럼 느껴진다. 훈장이 담뱃대를 물고 회초리를 든 채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던 모습은 이제 역사 속 장면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 서당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전남 구례군 문척면 토금마을에 자리한 초동서사(草洞書舍)가 그 주인공이다. 이름 그대로 ‘소 풀 뜯는 마을의 글방’이라는 뜻을 지닌 이 서당은, 1934년 겸산 안병탁(謙山 安炳鐸)선생이 처음 문을 연 이래로, 전통 한학 교육의 산실로서 보존되고 있다.
겸산 선생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조선 후기 유학자 노사 기정진(蘆沙 奇正鎭)의 학맥을 잇는 인물이다. 그는 율계 정기(栗溪 鄭琦)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고자 1933년 구례 토금마을로 이주했으며, 이듬해 자택 아래방에 ‘오봉산방(五鳳山房)’이라는 이름의 서당을 개설했다.
이후 서당이 협소해지자, 1957년 제자들과 마을 주민들의 뜻을 모아 지금의 초동서사를 새롭게 건립하였다.
초동서사는 온돌방 두 칸과 나무마루 한 칸, 그리고 부엌으로 구성된 전통 한옥 구조다. 첫 번째 방은 선생이 거처하던 면언당(勉言堂), 두 번째 방은 제자들이 공부하던 서당방(書堂房)으로 쓰였으며, 나무마루는 소오헌(嘯梧軒)이라 불리며 여름철 시조와 가사를 읊던 장소로 활용되었다.
겸산 선생은 평생을 흰 갓과 두루마기를 입고 선비의 절개를 지킨 인물로, "나는 망국의 백성이다"라는 자의식 속에 절제된 삶을 살아갔다. 한평생 경서와 시문을 가르치며 15권에 달하는 문집을 남겼고, 그에게 배운 제자는 기록된 수제자만 650여 명이고 약 1,000여 명의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이러한 선생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매년 5월 첫째주 토요일이면 전국 각지의 제자들이 모여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올해는 5월 3일에 초동서사에서 제향이 열렸으며, 이후 소오헌 마루에서 시조 경연대회도 함께 개최되었다.
초동서사와 겸산 선생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구례 문척면을 문도(文道)와 문향(文香)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뿌리로 평가받고 있다.
매년 거행되는 제향은 선생의 유지를 받드는 경향 각지의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 뜻을 다시 새기는 중요한 행사로, 올해도 그 전통이 변함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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